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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미세먼지는 바다로부터 온다?

by 정보모우미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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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는 바다로부터 온다?

대형 화물선이 컨테이너를 가득 싣고 바다에 떠있는 모습
대형 화물선

 

우리 정부는 한동안 미세먼지가 어디서 얼마나 만들어지는지 몰라서 석탄 화력발전소와 자동차 매연만 문제를 삼았습니다. 석탄 화력발전소가 많이 모여 있는 충청 지역과 자동차가 많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인천이나 부산과 같은 항구도시는 시야가 확 트여 있어 공기가 정체되어 있지 않으므로 공기가 비교적 깨끗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환경부가 2017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서울에서 배출하는 PM2.5의 양은 2,524톤이고, 부산에서는 2,544톤으로 항구도시인 부산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부산의 인구와 자동차 수는 서울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2020년 기준 부산 인구는 339만 명으로 서울 인구 966만 명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그리고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부산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2019년 기준 약 139만 대이며, 서울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312만대로 나타났습니다.

 

위 집계에서 보듯이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서울보다 훨씬 적은 부산의 미세먼지 배출이 서울보다 많을 이유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부산의 미세먼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중국과 인접해 황사의 영향을 받는 인천처럼 부산도 인접한 나라인 일본에서 오는 것일까요? 해답은 크루즈나 화물선 등 대형선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사실 중에 하나는 선박은 바다에서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한 원인이며, 우리의 생각보다 많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 결과, 부산의 미세먼지 중 51.4%는 선박에서 배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항을 무려 4만회나 드나드는 각종 선박이 부산 지역 미세먼지의 절반 이상을 배출했으며, 구도시인 울산과 인천도 미세먼지 발생원의 18.7%와 14.1%가 선박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조사되었습니다.

 

 

선박은 큰 덩치를 움직여야 하므로 가격 대비 효율을 따져 벙커C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벙커C유는 다량의 황을 함유한 저급의 값싼 연료이기 때문에 선박과 차량이 같은 양의 연료를 연소할 때 선박에서 배출되는 황의 양은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양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대형 크루즈선 한 척이 디젤 차량 350만 대분에 달하는 이산화황을 배출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차량이나 선박의 내연기관이 연소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황은 대표적인 미세먼지 유발물질입니다.

 

우리가 크루즈를 타고 이동중에 갑판 위로 나와 배의 굴뚝을 보면 엄청난 양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갑판 위에서는 매연과 접촉할 수 없지만, 가끔 바람의 영향으로 갑판에서 다량의 매연을 맞을 수 있는데, 그 냄새와 역함은 자동차의 매연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외국에서는 선박의 미세먼지 발생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환경보호단체인 자연과 생물다양성 보존 연맹은 유럽에서 운항 중인 크루즈 선박이 내뿜는 매연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중간 크기의 크루즈 선박 한 척이 매일 150톤의 저급 디젤 연료를 사용하면서, 자동차 100만 대 분량의 미세먼지와 42만 대만큼의 질소산화물, 그리고 4억만 대 정도의 황을 내뿜는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 항구에 크루즈 선박 한 척만 들어와도 그 도시의 모든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보다 많은 대기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셈입니다.

 

또한 해안가의 기상학적 특성도 항구도시의 미세먼지 농도를 높이는 요인입니다. 해안가는 낮과 밤에 바람의 방향이 다릅니다. 낮해밤육이라고도 하죠. 낮에는 육지가 바다보다 빠르게 가열돼 발생하는 상승기류에 의해 바다에서 육지로 바람이 부는 해풍이 불며, 반대로 밤에는 육지가 더 빠르게 식어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부는 육풍이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낮보다 밤의 온도 차가 적어 해풍보다 육풍이 더 셉니다. 이 차이 때문에 선박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계속해서 항구도시 쪽으로 빨려 들어와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박에서 내뿜는 미세먼지가 만만치 않자 국제사회는 논의 끝에 선박의 속도를 늦추자는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국제해상기구에서는 연구를 통해 2050년에 국제 해상 운송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미래의 경제와 에너지 성장률에 따라 50%에서 25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국제 해상 기구에서는 배의 속도를 늦출 것을 제안했습니다. 선박이 저속으로 운항한다면 미세먼지 배출도 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속으로 운항했을 경우에 얼마만큼의 매연이 발생하고, 또한 저속으로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의 발생량과 고속으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발생량이 따져보면 비슷할 거라고 생각이 들며, 또한 구체적인 증거는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신빙성 있는 주장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안으로 선박의 공회전을 줄이는 것도 좋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선박의 공회전을 줄이기 위한 육상전원 공급설비의 설치나 항구 내에서 선박의 저속 운항 등 항구 특성에 맞는 미세먼지 대책이 세워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구도시의 공기질 개선을 위해서는 선박이 배출하는 오염원 관리뿐만 아니라 해안의 기상 특성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관리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도 드디어 항구도시의 미세먼지를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범부처 미세먼지 특별 대책위원회의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 2020~2024 보고서에서 “타 부문에 비해 투자 지원이 부족해 관리가 미흡했던 선박·항만·건설기계 등에 대해 적극적인 미세먼지의 감축 조치를 추진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선박이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선박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하고 저속 운항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친환경 선박을 확대하기로 한 것입니다. 또한 항만 자체의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기 위해 하역 장비의 미세먼지 배출 기준을 신설하고, 친환경 항만 인프라를 구축하며, 항만구역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지금까지 차량과 발전소에만 갖혀있던 생각의 틀이 바뀌었다는 의미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미세먼지 저감에 있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정책들이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자동차라는 프레임에 갇혀온 지난날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예전에는 봄에만 황사의 영향으로 미세먼지가 안 좋아졌지만, 최근 들어 계절 구분 없이 대기가 정체한 날이면 어김없이 미세먼지는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좋은 정책들과 연구가 시행되고 개발되어 사계절 내내 맑은 하늘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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